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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필하모닉 게임음악회 <리니지>

국내 최고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 OST,

국내 최초 ‘리니지’만을 주제로 실연하는 게임음악회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게임음악 전문 플랫폼 기업 ㈜플래직과 공동으로 국내 최고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만을 주제로 국내 최초실연한다. 이번 공연은 오랜 시간 리니지와 함께 해온 유저들의 추억과 감동이 담긴 ‘리니지’, ‘리니지M’, ‘리니지W’의 대표 사운드 트랙들을 정통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로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다.

1998년 출시 후 수많은 유저들과 함께 해온 리니지는 국내 최초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으로2022년 현재까지도 서비스되고 있는 MMORPG(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의 살아 있는 신화다. PC 리니지의 정수와 창조적 계승을 담은 모바일 게임 ‘리니지M’에 이어 최근 글로벌 신작 ‘리니지W’가 출시되며 전 세계 유저들을 공략하고 있다.

‘리니지’, ‘리니지M’의 음악은 작곡가 안진우, 미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 제작자인 조이 뉴먼(Joey Newmann), NCSOUND(엔씨사운드) 등이 작곡한 것으로, 기존 국내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정통 클래식으로 구성됐다. 또한 ‘리니지W’는 게임ž영화 트레일러 음악 제작으로 유명한 유니크 혼 스튜디오(Unique Horns Studios), 작곡가 로빈 호프만(Robin Hoffmann), 미미 페이지(Mimi Page) 등 전 세계 다양한 뮤지션이 작곡, 편곡에 참여한 음악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리니지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과 그래픽을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프로그램

 

1부: 리니지(총45분)

 

Part 1 혈맹

1. 은둔자 + 피의 맹세 – 4분

2. 숙명의 밤 + 남자의 명예 + 공성 – 6분

3. 저항할 수 없는 힘 + 파괴 + 당신의 바램 + 방랑자들 + 별을 쫓아서 + 만일 + 월광 – 7~8분

4. 영원 – 2분

 

Part 2 레거시 vol.1

1. 침묵의 동굴 + 몽환의 섬 – 2분

2. 깊숙한 지저 + 검은 요새 + 숨겨진 이야기 + 망자의 은신처 – 4분

3. 아덴의 용사들 + 최후의 결전 – 3분

4. 새벽빛 안개 – 2분

5. 너구리의 모험 + 구름 위의 왈츠 – 3분

6. 명예의 땅 – 2분

 

Part 3 레거시 vol.2

1. 실베리아 – 2분

2. 피할 수 없는 운명 + 이집트 입구 + 아뉴비스의 공격 + 파라오의 분노 – 7분

 

 

2부: 리니지 W(총 30분)

 

1. 메인 테마 – 3분

2. 붉은 머리의 왕자 – 2분

3. 신념의 기사 – 2분

4. 악몽 속의 마법사 – 2분

5. 속죄하는 요정 – 2분

6. 역경을 딛고 리메이크 – 3.5분

7. 군단의 땅 – 2분

8. 평화의 순간 – 2.5분

9. 고독한 모험가 – 3분

10. 영광의 흔적 – 2분

11. 현자들의 시간 –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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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수천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이 든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실수로 버린 남성의 근황

 영국 웨일스 뉴포트 출신의 IT업계 종사자 제임스 하우얼스(37)다. 그는 2013년 사무실을 정리하던 중 낡은 노트북에 들어있던 하드디스크를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이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안에는 무려 7500개의 비트코인이 들어있었고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억5000만 파운드(약 2393억원)에 달했다.

하우얼스는 2009년부터 암호화폐를 채굴했으나 당시에는 가치가 매우 낮아 하드디스크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2013년 말 비트코인 1개 가격이 1200달러(약 157만원)까지 치솟자 보관해뒀던 디스크를 찾아 나섰고, 그제야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비트코인을 되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먼저 쓰레기 처리장을 찾아 디스크의 행방을 추적했고 좌표 참조시스템을 이용해 매립지 특정 부분을 파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어 지방정부 당국에 수색 허가를 요청한 뒤 그 조건으로 거액의 기부금을 제안했다.

하우얼스는 지난해 CNN 등 주요 언론에 등장해 “비트코인을 되찾으면 25% 또는 5250만 파운드(약 838억8000만원)를 기부하겠다. 약속이 이행된다면 31만6000명의 뉴포트시 주민은 각자 175파운드(약 28만원)씩 받을 수 있다”며 “나머지 절반가량은 이번 계획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남은 25%를 내가 가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은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해당 작업이 주변 지역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매립지를 파낸 뒤 다시 묻고 잔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백만 파운드가 낭비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한동안 당국과의 입장 차이로 갈등을 빚자 하우얼스는 최근 인공지능(AI)과 로봇 개를 활용한 수색 구상까지 내놨다. AI 기술을 적용한 기계 팔로 수천 톤에 이르는 쓰레기를 거르겠다는 계획이다.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디스크 도난 방지를 위해 로봇 개를 곳곳에 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우얼스는 이미 헤지펀드로부터 1000만 파운드(약 159억원)를 지원받은 상태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팀에는 여러 명의 환경·데이터 전문가가 합류할 예정이며 예상 소요 기간은 9~12개월이다. 하우얼스는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다재다능한 팀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높은 수준으로 이 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또 “우리의 계획 중 하나는 비트코인을 찾아 10%를 지역 사회에 쓰는 것이다. 쓰레기장을 정화해 그곳에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싶다”며 “풍력 터빈 2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발전된 전기로 뉴포트 주민을 위한 비트코인 채굴 시설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하드디스크가 발견된다고 해도 오랫동안 쓰레기 더미에 묻혀있던 탓에 수년 전 채굴한 비트코인이 정상적으로 회수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아직 뉴포트 시의회가 “해당 계획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생태학적 위험을 갖고 있다”며 미승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 단계부터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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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成語(한자성어)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

 

佳人薄命(가인박명) : 용모가 너무 빼어나면 운명이 기박하다.

<아름다운 가><사람 인><엷은 박><목숨 명>

☞  소식(小食)은 그의 시 『박명가인(薄命佳人)』에서 자신이 항주(杭州), 양주(楊州) 등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본 어여쁜 젊은 여승(女僧)의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 시절을 생각해 보니 미인의 운수가 기박한 것 같다고 읊은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지니고 있어서 능히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처지의 사람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도 기구한 길을 걷게 되는 경우를 가리켜 말한다.  미인박명(美人薄命)도 같은 말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 칼이 물에 빠지자 나중에 배가 움직일 것은 생각지도 <새길 각><배 주>      못하고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해 두었다가 칼자국 <구할 구><칼 검>     을 기준으로 뱃전 부근에서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                           로 시세의 흐름에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  초나라 사람이 칼을 껴안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옆의 사람들이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을 팔다가 배가 강 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껴    안고 있던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앗, 큰일났다!”

    사나이는 외치며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칼은 이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한 사나이는 주머니칼을 꺼내 떨어진 방향으로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하    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여기에서 떨어졌거든.  하지만 표시를 해 놓았으니까 이제 안심이     야.”

    잠시 후 배가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 곧 표시해 놓은 뱃전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칼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으려 한다(刻舟求劍).”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肝膽相照(간담상조) : 간과 쓸개를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  <간 간>  <쓸개 담>    놓고 격의 없이 친하게 사귐을 일컫는 말이다.

<서로 상><비출 조>                          

☞  궂은 일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의 신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서로    의 쓸개와 간을 꺼내 보일 정도로 터놓고 이야기하며 언제까지나 우의를 지키자    고 약속하지만 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모른척하는 사람이 많다.  한유(韓    愈)는 평생 맹교(孟郊)나 가도(賈島)와 같은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아마도    여러 번 직면했던 곤경 덕택에 참된 우정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익힌 결과일 것이다.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地銘)에서는 먼저 유종원(柳宗元)의 선조의 사적부터 설    명하고, 그 사람됨과 재능과 정치가로서의 업적을 칭찬하고 나중에는 그 우의가    두터움을 찬양하였다.

 

改過遷善(개과천선) :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새롭게 착한 사람이 된다는  <고칠 개><허물 과>     뜻이다.

<옮길 천><착할 선>

☞  주처(周處)의 아버지 주방(周紡)은 동오(東吳)와 파양(鄱陽)의 태수를 지냈으나    불행히도 주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은 뒤부터 점점 외곬으로 빠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    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 사람들은 대적하지 못할 정도여서 걸핏하    면 남을 두들겨 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주처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쳐    서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 통개전비 중신주인)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들 의식주에 대한 걱정없이 사는데, 왜 여러분들    은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오?”

    이 때 어느 대담한 마을 사람이 대답했다.

    “세 가지 해로움도 제거하지 못했는데 어찌 태평을 논할 수 있겠나?”

    “세 가지 해로움이라니요?” 주처는 이상히 여겨서 물었다.  “남산에 있는 사    나운 호랑이, 장교(長橋)에 있는 교룡(蛟龍), 그리고 주처 자네를 합하여 세 가지    해로움이라 하는 걸세.”

    주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더욱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굳혔     다.  이때부터 주처는 뜻을 세우고 글을 배웠다.  그 후 십여 년간 덕과 학문을    닦고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乾坤一擲(건곤일척) : 하늘과 땅을 향해 한번에 내던진다는 뜻으로 천하를   <하늘 건> <땅 곤>    잃느냐 얻느냐, 또는 죽느냐 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한 일> <던질 척>     등 사생 결단하는 최후의 한판 승부를 일컫는다.

☞  진(秦)이 멸망한 뒤 천하가 통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초(楚)의 항우(項羽)와 한    (漢)의 유방(劉邦)이 이곳에 선을 긋고 천하를 나누어 가졌다.  이시는 당시를     추억한 것이다.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피로하고 호랑이는 곤하여 천원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보존하였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군가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길 권하며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실로 천하를 건 한판의 도박을 벌였구나.

    항우와 유방은 진의 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하였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천    하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되었다.  항우가 반란군을 토벌하고 있는 틈에     유방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 땅을 병합해 버렸다.

 

結草報恩(결초보은) :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  즉, 죽어서도 은혜를    <맺을 결> <풀 초>     잊지 않고 갚는다는 얘기다.

<갚을 보><은혜 은>

☞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첩이 있    었으나 그 사이에 자식은 두지 않았다.  그래서 위무자는 병이 들자 아들인 과    (顆)를 불러 말했다.

    “반드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병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죽여서 함께 묻어 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魏顆)는 그녀를 다른곳으로 시집보내면서 말했다.

    “병이 심해질 적에는 머리가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나는 병세가 악화되    기 전의 아버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그 후 선공(宣公) 15년에 진(秦)의 환공(桓公)이 전쟁을 일으켜 군대를 보씨(輔    氏)에 주둔시켰다.  이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는 진(秦)의 이름난 장수 두회를 사    로잡았다.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에 있는 풀을 엮어 걸려 넘어지게 해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傾國之色(경국지색) :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색이라는 뜻으로,    <기울 경><나라 국>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갈 지>  <빛 색>

☞  한무제(漢武帝)를 모시고 있는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자가 있었다.  음악적 재    능이 풍부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므로 무제의 총애를 받고 있    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절세로 단 한 사람뿐

        일고(一顧)하면 성(城)을 기울게 하고

        재고(再顧)하면 나라를 기울게 했다.

        어찌 경성(傾城) 경국(傾國)을 모르리요마는

        가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니.

    무제는 노래를 듣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세상에 그런 여인이 정말 있을까?”

    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연년에게는 누이동생이 있거든요.”

    무제는 곧 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    했다.  무제는 곧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인에게 빠져서 나라가    망해도 모를 만큼 된다는 뜻이다.

 

鷄肋(계륵) : 닭의 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닭 계>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물을 이르는 말로서, 이러<갈비 륵>   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뜻한다.

☞  조조(曹操)와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게 되었    다.  유비는 익주(益州)를 근거지로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배치하여 한중을 평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보급이 충분하지 못하여 유비의 군대를 공격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지    키고 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조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부하들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조조에게 찾아왔     다.  이때 조조는 닭갈비를 뜯고 있다가 혼자 “계륵 계륵.” 하더니 아무말이 없    었다.

    부하들은 아무도 조조의 말뜻을 몰랐다.  오직 양수(揚修)만이, “닭갈비는 먹    을 만한 것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한중을 포기하기는 아깝지    만 그렇다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철수를 결정하실 것이    다.”라고 조조의 생각을 미리 짐작하였다.

    다음날 조조는 양수의 말대로 한중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양수는     혼자 예견하고 짐을 꾸렸지만 조조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鷄鳴狗盜(계명구도) :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서 좀도둑<닭 계><울 명>       질을 잘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기술에 능한 비천한 사  <개 구><훔칠 도>     람을 말한다.  또는 천한 재주나 기능도 훌륭하게 쓰일                         때가 있음을 말한다.

☞  제(濟)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남다른 재주    를 가진 사람이라면 식객(食客)으로 맞아들이니, 그 수가 3천명을 넘었다.  진     (秦)나라의 소왕(素王)은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그    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가자, 소왕은 그가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    록 억류하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소왕의 애첩은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 만든 아주 귀한 털옷인데, 맹상군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이미 소왕에게 이    것을 바쳤기 때문에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 맹상군을 따라간 식객 중의 한 사람이 진나라 대궐에 들어가 개 흉내를    내며 호백구를 훔쳐 와서 소왕의 애첩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호백구를 받은    애첩이 소왕에게 그를 풀어 줄 것을 애원하니, 소왕은 맹상군을 제나라로 돌아    가도록 허락했다.  맹산군은 곧 말을 달려 한밤중에 국경 근처인 함곡관(涵谷關)    에 이르렀다.

    얼마 후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한 소왕이 군사를 보내 맹상군을 잡아오    도록 하였다.  맹상군이 급히 관문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곳의 법에 관문은    첫닭이 울기 전에는 열 수가 없었다.

    이때 식객 중의 한 사람이 닭의 울음소리를 내자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이에 관문이 열리고 맹상군은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행이 탈출    한 직후 추격대가 관문에 도착했으나, 이미 떠나간 뒤였으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股肱之臣(고굉지신) :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다리 고><팔뚝 굉>   가장 가까이하며 신임하는 중신(重臣)을 일컫는 말이    <갈 지> <신하 신>    다.

☞  신작짐고굉이목   여욕좌우유민여익   여욕선력사방여위

    臣作朕股肱耳目   予慾左友有民汝翼   汝慾宣力四方汝爲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이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들을 돕고자 하니 그    대들도 힘써 도와 달라.  내가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려 하거든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

    순임금이 신하들에게 자신을 잘 보좌하여 나랏일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 말이    다.

 

鼓腹擊壤(고복격양) :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격양놀이를 한다는 뜻 <북 고>  <배 복>      으로, 백성들이 그처럼 태평할 만큼 그 시절이 평화스<칠 격>  <흙 양>      럽다는 뜻이다.

☞  백발 노인 한 사람이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격양놀이(옛날 중국에서 하던 유희의    하나)를 하는데,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즐겁게 하고 있었다.

        일출이작  일입이식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들며

       착정이음  정전이식

       鑿井而飮  町田而食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나니

       제력하유진아재

       帝力何有珍我哉      임금의 덕 따위야 무엇하리요

    그 옆을 지나던 요(堯) 임금은 이 노래를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마    음이 놓이는구나.  백성들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배를 두드리며 격양놀이 등으    로 자기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하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古稀(고희) :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으로 70세를 고희라고 한다.

<옛 고><드물 희>

☞  두보(杜甫)의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시에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온다.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입고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  하루같이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술빚은 예사로 도처에 있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릉(少陵)이 호이다.  전란으로 가족을 잃    는 등 개인적으로는 불행이 잇달았지만, 일생을 통하여 뛰어난 명시를 많이 남    겼다.  ‘고희’라는 말은 이 시의 ‘인생칠십고래희’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로부터 드물다(稀)는 뜻에서 보기 드물 나이에 도달함을 축하하는 의미로 사용    하게 되었다.  보통 70세를 가리켜 ‘고희’라고 한다.

 

曲學阿世(곡학아세) : 평소에 자기 신조나 소신, 철학 등을 굽혀 시세에 아   <굽을 곡> <배울 학>  첨함을 말한다.

<아첨할 아><세대 세>

☞  원고생(轅固生)은 전한(前漢) 경제(景帝)때의 학자였는데, 무제(武帝) 때에도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엉터리 학자들이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되돌    리려고 원고생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무제는 그 중상모략을 물리치고     원고생을 등용하였다.  원고생과 함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도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어빠진 영감이라고 무시하는 눈초리로 원고생을 대했으나    원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공손자는 부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구부려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    나(公孫子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절조를 굽히지 않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空中樓閣(공중누각) :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현실성이 없는 일<빌 공><가운데 중>    이나 근본이 없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성어이다.

<다락 루><누각 각>

☞  심괄(沈括)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등주사면임해춘하시요견공제유성시누대지장사인위지해시

       登州四面臨海春夏時遙見空際有城市樓臺之狀士人謂之海市

      (등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멀리 수평선 위로          누각들이 줄을 이은 도시가 보인다.  지방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한다)

    그 후 청(靑)나라의 학자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금칭언행허구자왈공중누각용차사

       今稱言行虛構者曰空中樓閣用此事

      (지금 말과 행동이 허황된 사람을 가리켜 궁중누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               을 말한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역시 겉모양    은 번드르하지만 기초가 약하여 오래 가지 못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 등에 빗    대어 사용한다.

 

管鮑之交(관포지교) :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처럼 서로 믿고 <대롱 관><절인고기 포> 이해하는 친밀하고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 관계를 뜻  <갈 지>   <사귈 교>    한다.

☞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지우였다.  처음에 둘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누는데    언제나 관중이 많은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를 탐욕스럽다고 여기    지 않았다.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에 여러번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    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무    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전쟁터에 나아가 세 번 모두 도망쳐 왔을 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제(齊)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관중이 모시고 있던 규(糾)와 포숙아가 모    시던 소백(小白)이라는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포숙아가 모시    던 소백이 승리하였으나 그가 바로 유명한 제나라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왕위에 오른 후 규(糾)를 죽이고, 관중의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설득으로 그를 용서해 주고 재상에 임명하였다.

    그 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였다.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제나라를 부국강병한 국가로 만들어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관중은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라    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아의 사람을 정확하게 알    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였다고 한다.

 

刮目相對(괄목상대) : 얼마 동안 못 보는 사이에 상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비빌 괄>  <눈 목>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   <서로 상> <상대 대>  고 상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매우 무식    한 사람이었으나 전쟁에서 공이 많아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를 하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손권의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노숙이 여몽을 찾아갔다.  노숙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여몽의 박삭함에 깜짝 놀    라고 말았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가?  이제 학식이 대단하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군.”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    야 하는 법일세.”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충실한 사냥개도 쓸 <교활할 교><토끼 토><죽을 사>  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소     <어질 양><개 구><삶을 팽>    용이 없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없애 버                            림을 가리킨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도 함.  

☞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    王)으로 봉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때, 항우의 부    하였던 종리매(鐘離昧)라는 장수가 옛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보    고가 들었다.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친    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도리어 그를 숨겨 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었으므로 유방은 진평(陳平)의 책략에 따라 제후들의     군대를 소집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    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약삭빠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폐하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    를 죽여 유방에게 보인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는 정말 한    심한 일을 생각했군.  내가 자네를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    이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그 주인에게 먹히듯이, 온 힘을 다해 섬긴 내가 이번에는 유방의    손에 죽는구나.”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초왕(楚王)에서 회음후(澮陰     候)로 좌천시켰기 때문에 이후로는 회음후로 불리게 되었다.

 

群鷄一鶴(군계일학) :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평   <무리 군> <닭 계>   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는    <한 일>  <학 학>    것을 비유한 말이다.

☞  혜소(嵇紹)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죽은 후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    고 있었으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우이며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당시 무제(武帝)에게 상주하였다.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시대    의 극결(郤缺)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관직에 오    르게 해주십시오.”  황제는 그를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     (紹)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    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한 게 학 한 마리가 닭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녜(野鶴如在    鷄群 야학여재계군).”

 

君子三樂(군자삼락)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군자 군><아들 자><석 삼><즐거울 락>

☞     군자유삼락이와천하불여재언    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在焉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이락야    득천하영재교육지삼락야

       仰不愧於天府不炸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        「孟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음    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

 

捲土重來(권토중래) :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분발하여 세력을 되찾아서    <말 권> <흙 토>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이다.

<다시 중><올 래>

☞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할 수 없는 것

      승패병가불가기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을 수 있음이 바로 남아라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俊才  강동의 자제에는 준재가 많으니

      강동자제다준재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으면 승패를 알 수 없을 터인데

      권토중래미가지

    위의 시는 두목(杜牧)이 항우(項羽)에 대하여 읊은 시 중의 하나이다.  항우가    죽은 지 천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두목이 나루터에서 항우의 인품을 그리며    젊은 나이(31세)로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목의 시에는, ‘강동에 계시는 부모 형제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고 견디었더    라면 우수한 자제가 많은 곳이므로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고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정이 배어 있다.

 

錦上添花(금상첨화) : 비단옷을 입은 데다가 꽃을 가진다는 뜻으로, 좋은    <비단 금> <위 상>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진다는 말이다.

 <더할 첨> <꽃 화>

☞  다음 시는 왕안석(王安石)이 만년에 정계를 떠나 은거해 살 때 지은 즉흥시이    다.

       하류남원안서사

       河流南苑岸西斜  강은 남원을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풍유정광로유화

       風有晶光露有華  바람엔 맑은 빛이 있고 이슬에는 꽃이 있다

       문류고인도령댁

       門柳故人陶令宅  문 앞의 버들은 옛사람 도령의 집이요

       정동전일총지가

       井桐前日總持家  우물가의 오동은 전날 총지의 집이다

       가초욕복배중록

       嘉招欲覆盃中淥  좋은 모임에서 잔 속의 술을 비우려 하는데

       여창잉첨금상화

       麗唱仍添錦上花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편작무릉준조객

       便作武陵樽俎客  문득 무릉의 술과 안주를 즐기는 손님이 되어

       천원응미소홍하

       川源應未少紅霞  내의 근원에 응당 붉은 노을이 적지 않으리라

  

錦衣夜行(금의야행) :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말로 아무리 출세해도    <비단 금> <옷 의>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밤 야>  <갈 행>

☞  항우(項羽)가 함양(咸陽)에서 입성에 성공한 후 사정에 의해 고향에 돌아기지    못함을 한탄해서 한 말이다.

       부귀불귀고향여의금야행  수지문자

       富貴不歸故鄕如衣錦夜行  誰知文者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       다.  이것을 누가 알쏘냐!)

 

杞人之憂(기인지우) : 기우(杞憂)라고도 함.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이란  <나라이름 기><사람 인> 뜻으로, 공연히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갈 지>  <근심 우>

☞  기나라의 한 사람이 만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여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찾    아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이므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그리고 땅도 흙덩이가 쌓인 것뿐이라네.  그것이 사방에 꽉차서 흙이 없는 곳은    없지.  왜 땅이 꺼지는 것을 걱정하나?”

    그러자 비로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洛陽紙價貴(낙양지가귀) : 책이 세상에 널리 많이 읽힘을 일컫는 말.  진     <물이름 락>  <볕 양>    (晉)나라 좌사(左思)가 10년이나 걸려 삼도부(三   <종이 지><값 가><귀할 귀>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그 글                     을 배꼈으므로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삼도(三都)란 삼국시대의 세 도음, 즉 위나라의 업, 오나라의 건업, 촉나라의     성도를 말한다.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좀처럼 뜻하는 지위에 나갈 수 없어서     부(賦)의 형식으로 이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    짝 놀라게 해주고자 생각했다.  10년 후 마침내 삼도지부(三都之賦)가 완성되었    다.  우수한 작품인데다가 유명한 시인이 서문을 썼기 때문에 귀족이나 부자들    이 서로 다투어 삼도지부를 복사했다.  결국 마침내는 도읍지인 낙양의 종이 값    이 올라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難兄難弟(난형난제) :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어려울 난><맏 형>   으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에 사<어려울 난><아우 제> 용하는 말이다.                        「世說新話」

☞  후한(後漢)의 진식(陳寔)은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함께 삼군(三     君)으로 불릴 정도로 부자간의 덕망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기의 아들인 진군(陳群)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 때 재상을 역임한 재능    이 뛰어난 인물이다.

    진군이 어릴 때,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자랑    하며 논쟁을 벌였다.  두 사촌끼리 서로 자신의 부친이 훌륭하다고 주장을 해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 진식에게 가서 판정을 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진식은 두 손자에게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 말하기를, “형인 진기도     형 되기가 어렵고, 아우도 훌륭한 형의 동생 되기가 어렵다.”고 답하였다.

    즉,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못한 지 가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원방난위형  계방난위제

     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

 

南柯一夢(남가일몽) :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밑에서 꾼 잠깐 동안의 꿈이  <남녘 남><가지 가> 라는 뜻으로, 한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다고 하여     <한 일> <꿈 몽>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  당(唐)나라 때의 일이다.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사람은 협객(俠客)으로 유명한    데, 술을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장군과 충돌    한 끝에 낙향하게 되었다.

    순우분의 집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날마다 친구들과 그 그늘에서 술을 마시    며 지냈다.

    어느 날 순우분은 만취하여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임금 앞으로     안내되었다.  임금은 매우 반가워하며 그를 부마로 맞이할 뜻을 비쳤다.

    이윽고 순우분은 출세에 출세를 거듭하여 고관으로 임명되었고 20년 동안 정    치를 잘하여 백성들은 그를 하늘처럼 우러러보았다.  그 사이에 다섯 아들과 두    딸을 얻었는데, 아들들은 다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王家)에 시집을 가서    잘 살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 크게 패하고 아내마저 병사하자 그는 벼슬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그의 명성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귀족들이 문전성시(門前成    市)를 이루었고 나날이 그의 세력이 커졌다.  그러자 이를 시기하여 그가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투서를 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근신하도록 명    령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눈을 뜨고는 모두가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꿈으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    을 깨닫고, 술과 여자를 멀리하며 도술(道術)에 전념하게 되었다.

 

囊中之錐(낭중지추) : 주머니 속에 송곳이 들어 있으면 뾰족하여 밖으로 뚫<주머니 낭><가운데 중>고 나오는 것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재   <갈 지> <송곳 추>    능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금선생처승지  삼년어차의  승말유소문시선생무소유야

       今先生處勝之  三年於此矣  勝末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        「史記」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으면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그 끝이 즉시 나타나        는 법이오.  그대는 나의 문하에 있은 지 3년이 되었지만, 내 좌우의 근신이 아직도        그대를 칭찬한 적이 없으며, 나도 그대에 관해서 들은 바가 없소)

    모수(茅蒐)라는 사람이 찾아와 평원군(平原君)에게 자청했다.

    “인사를 뽑았으나 아직 한 사람이 모자란다고 하니 제발 제가 수행원 속에 끼    어 가게 해주십시오.”

    평원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의 문하에 몇 해 동안이나 있었소?”

    “3년쯤 되었습니다.”

    “3년이 되어도 그대를 칭찬한 소문을 들은 적이 없소.  그대는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으니 단념하시오.”

    모수가 대답했다.

    “저는 오늘 비로소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를 청했을 뿐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사람은 모수를 경멸하여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비웃었다.  초에 이르는 동안 모수는 열아홉 사람과 얘기    를 나눈 끝에 모두를 복종시키고야 말았다.  마침내 평원군은 모수에게서 결정    적인 도움을 입어 초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累卵之危(누란지위) : 높이 쌓아올린 계란이란 뜻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무<포갤 루><계란 란>   너지고 마는 상태.  즉, 아주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갈 지><위험할 위>   을 말한다.

☞     진왕지국  위어누란  득신즉안  연불가이서전야  신고재래

       秦王之國  危於累卵  得臣則安  然不可以書傳也  臣故載來       「史記」

    (“진나라는 지금 계란을 쌓아 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  나를 얻으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글로는 전할 수 없다.”고 하는 터라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억울한 죄명으로 죽을 고비에서 천행으로 살아난 범    저(范雎)는 장록(長祿)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다가 마침 위나라를 다녀가는 진     (秦)나라 사신 왕계(王季)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왕계는    진왕에게 위와 같이 장록이 한 말을 전하고 이렇게 간하였다.

    “위나라에 장록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천하의 뛰어난 변사(辯士)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범저는 진왕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대외정책을 진언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多多益善(다다익선)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많을 다><많을 다><더할 익><착할 선>

☞  한고조(漢高祖)인 유방(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다음, 당시 초왕(楚王)이 있던     한신(韓信)에게 반란의 기미가 있다고 하여, 붙잡아서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     (澮陰候)로 좌천시켜 도읍에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유방은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대하여 한신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는     데, 한신에게,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는 장군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이 대답했다.

    “글쎄요, 폐하께서는 그저 10만 정도가 아닌가 봅니다.”

    “그래, 그럼 귀공은 어떤가?”

    그러자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는 대답이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고조가 웃으면서, “그 <다다익선>이란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는가?”하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    했다.

    “그것은 별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군노릇은 별로 잘하시지 못하지    만, 장군의 장군다운 점에 있어서는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 로로    가 된 이유입니다.  더구나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재능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斷機之敎(단기지교) : 짜던 베도 도중에 자르면 쓸모가 없듯이, 학업도 도 <끊을 단><기계 기>   중에 중단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말이다.  단기지계 <의 지><가르칠 교>    (斷機之戒)라고도 함.             「後漢書․烈女傳」

☞  맹자가 어렸을 때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짜다가 “공    부가 어느 정도에 이러렀느냐?”고 물었다.  맹자가 “그만 저만 합니다.”라고 대    답하니, 맹자의 어머니가 칼로 베를 끊어 버렸다.  맹자가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으니, “네가 학업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    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학문을 닦지 않으면 남의 심부름꾼밖에 될    것이 없다.”며 타일러 보냈다고 한다.  맹자는 느낀 바 있어 아침 저녁으로 쉬지    않고 부지럼히 배워서, 나중에 천하의 이름난 학자가 되었다.

 

大器晩成(대기만성) : 큰 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    <큰 대> <그릇 기>  생 끝에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늦을 만><이룰 성>

☞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  목소리가 유연    하고 모습은 한층 눈에 띄며 수염이 4척이나 되는 이 장수를 무제(武帝)는 누구    보다도 신임하고 친근히 여겼다.

    최염에게는 사촌인 최림(崔林)이 있었는데 친척들에게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    을 보고, “동생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인물됨을 평했     다.

    얼마 후 과연 최림은 천자의 고문이 되었다고 한다.          「老子」

 

☞  『노자(老子)』는 제41장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등의 선비는 도(道)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있    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하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    다.  웃지 아니하면 족히 써 도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세운 말에     이런 게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고, 평    탄한 도는 험한 것 같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와 같고, 너무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 같고, 세운 덕은 변하는 것 같고, 변함없는 덕은 변    하는 것 같고, 큰 네모에는 구석이 없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大器晩成,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상이 없다.  도(道)는 숨겨져서 이름이 없    다.  대저 오직 도는 잘 빌려 주어 또 이룬다.>

    여기에서 말한 <대기만성>의 만성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되며, 또 < 큰     인물은 늦게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塗炭之苦(도탄지고) : 석탄 속에 빠진 온몸의 괴로움을 나타낸 말로서, 심     <칠할 도> <숯 탄>    한 고통속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의 지><괴로울 고>

☞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대군을 대파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탕왕의 서사(誓詞)는 서경(書經)의 탕서편(湯誓篇)으로 남아 있    었는데, 걸왕과 싸워 대승하고 개선했을 때 탕왕은 제후들에게 걸왕의 무도함을    공격하여 말하되, “하늘은 재앙을 하나라에 내려 이로써 그 죄를 밝혔다.”고 했    다.

    걸왕의 학정을 비난한 말은 고전에 많이 보이나 그중에서도 서경의 중훼지고    (仲虺之誥)에서는 “유하혼덕(有夏昏德)하여 백성이 도탄(塗炭)에 떨어지다.”라고    했다.  걸왕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받는 고난을 ‘백성이 도탄에 떨어지다.’라고 비    유한 것이다.

 

同病相憐(동병상련) : 같은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불쌍히  <같은 동><앓을 병>   여긴다는 뜻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서로 상><불쌍히 여길 련>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말이다.

☞  오(吳)나라의 강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따온 말이다.

    동병상련 동우상구

    同病相憐 同憂相救  같은 병자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심은 서로를                          구제한다

    경상지조 상수이비

    驚翔之鳥 相隨而飛  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 날고

    뇌하지수 인부구류

    瀨下之水 因復俱流  여울 아래 물은 다시 함께 흐른다          「吳越春秋」

 

登高自卑(등고자비) :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야 한다   <오를 등><높을 고>  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스스로 자><낮을 비>  다. 「中庸」

☞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군자지도 벽여행원필자이 벽여등고필자비 시왈 처자 호합 여고슬금 형제기흡

     和樂且耽 宣爾室家 樂爾妻孥 子曰 父母其順矣乎

     하탁차람 선이실가 낙이처노 자왈 부모기순의호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      를 타듯 하고 일찍부터 형제의 뜻이 맞아 즐겁고도 즐겁나니,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읊고서 “부모는 참 안락하겠      다.”고 말했다)

 

登龍門(등용문) : 어려운 고비를 돌파하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문  <오를 등><용 룡><문 문> 이다.  입신출세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  하진(河津)은 용문(龍門)이라고 해서 물실이 매우 험한 곳이었는데 웬만한 물    고기들은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곳을 통하여 하늘에 오르기만 하    면 용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보통 입신양명의 길로 나서게 되는 큰 시혐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세력 있    는 인물과의 만남에도 종종 쓰이는 말이다.  반면에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로서    점액(點額)이라는 말이 있는데,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뜻한다.

 

馬耳東風(마이동풍) : 말의 귀를 스치는 동쪽 바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    <말 마> <귀 이>    람의 의견이나 충고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녘 동><바람 풍>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 읽기)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왕거일한야독작유회

       王去一寒夜獨酌有懷

    ‘왕거일이 추운 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회포에 잠기다.’라는 시에 나온다.  귀    족 사이에는 사치가 만연되어 있는데 서민들의 고충을 진술해도 상대하지 않고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輓歌(만가) :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끌 만><노래 가> 노래를 말한다.

☞  한고조(漢高祖)는 즉위한 후, 전횡(田橫)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    여 회유책을 쓰기로 하였다.  죄를 용서하는 대신에 낙양으로 들어와 신하 되기    를 청하였다.

    그러나 낙양성 밖 30리까지 왔던 전횡은 절개를 굽히고 한고조의 부하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하고 말았다.  남은 가족과 부하들도 그를 좇아 모두     자결하였는데, 사람들은 전횡의 높은 절개를 사모하는 마음에 상가(喪歌)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麥秀之嘆(맥수지탄) : 맥수(麥穗)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뜻으로, 옛날 번영 <보리 맥><빼어날 수>  하던 도읍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고국의   <의 지> <탄식할 탄>   멸망을 탄식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  기자(箕子)는 주왕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殷)의 옛성 근처를 지나게 되었     다.  전에는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건만 이제는 옛날과 너무나 변해 버린 모습에    서글퍼져서 맥수지시(麥秀之詩)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맥수점점혜 화맥유유혜

     麥秀漸漸兮 禾麥油油兮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 무성하고 벼와 기장들도 잎이                              기름지도다

     피교동혜 불흥아호혜

     彼狡僮兮 不興我好兮  저 교동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맏 맹><어머니 모><석 삼>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됐 <옮길 천><의 지><가르칠 교>    다.                   「後漢書․烈女傳」

☞  맹자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했는데, 공동 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놀이도    상여를 메고 가는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는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 못 되    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 맹자 어머니는 곧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    자는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행동하는 광경을 흉내    내며 노는 것이었다.  그 후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盲人摸象(맹인모상) :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사물의 일부만을 알   <소경 맹><사람 인>   면서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  <더듬어 찾을 모><코끼리 상> 다.

☞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명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오시오.  그리고 장님들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시오.”

    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만져 보고 느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져 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고 큰 무와 같습니다.”

    귀를 만져 본 다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쌀을 까부는 키 같습니다.”

    발을 만져 본 장님과 코끼리의 뱃가죽을 만져 본 장님도 저마다 의견을 내놓    았다.

    “코끼리의 형상은 절구통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배가 툭 튀어나온 옹기와 같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이 큰소리로 “천만의 말씀입    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은 밧줄과 꼭 같습니다.”라고 외쳤    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것은 장님들은 코끼리    전체를 만져 보지 않고 코끼리의 일부만 만져 보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毛遂自薦(모수자천) : 모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고사에서 <털 모><드디어 수>   나온 말이다.  남이 추천해 주지 않으니까 기다리다 못<스스로 자><천거할 천> 해 스스로 자청해서 나서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史記․平原君列傳」

☞  조(調)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초(楚)나라의 협조를 얻    고 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3천명 가운데 20    명을 뽑아서 초나라에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이 끼기를 청하였다.

    평원군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내가 3년 동안 데리고 있었으나 장점을 하나도 발견 못했노라.”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뾰족이 나오는 송곳처럼 나타날 것이니 일을 맡    겨 주십시오.”

    결국 모수를 데리고 가서 회담이 성공하였다.

    초왕은 모수의 위엄과 설득에 굴복하여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낼 것을 약속하    게 되었던 것이다.  귀국하자 모수는 상객(上客)으로 대접받았다는 고사에서 나    온 말이다.

 

矛盾(모순)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창 모><방패 순>

☞    楚人(초인)에 有賣盾與矛者(유매순여모자)러니 譽之曰(예지왈) 吾盾之堅(오순      지견)은 莫能陷也(막능함야)라 하고

      又譽其矛曰(우예기모왈) 吾矛之利(오모지리)는 於物無不陷也(어물무불함야)니      라 하니

      或曰(혹왈) 以子之矛(이자지모)로 陷子之盾(함자지순)이면 何如(하여)요 하니      其人(기인)이 不能應也(불능응야)러라.                          「韓非子」

    초(楚)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패에 대해 말하기    를 “나의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에    대해 말하기를 “이 날카로운 창이면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쩌겠소?”하고 물으    니 그 사람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히 도구를 챙겨 가지고 슬그머니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숨기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어떤 말이나 행동의 이치가 서로 상반되어 조리에 닿지 않는 경우,    또는 어떤 상태나 판단이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빗대어 쓰이는 말이다.

 

武陵桃源(무릉도원) : 속세와 동떨어진 별천지.  즉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 <군사 무><언덕 릉>   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복숭아 도><근원 원>                                           「桃花源記」

☞  진태원(晉太元)때 무릉인(武陵人)이라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    는데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문득 복사꽃나무 숲을 만나 바라보니 양 언덕으로 수백 보에 이르도록 다른     나무는 없고 복사꽃나무만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걸    어나가 그 숲이 다한 곳까지 이르자, 어느 산속에 물이 솟아나는 골짜기가 나왔    다.  조그마한 굴이 있었는데 꼭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문득 배를 버리고 굴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접아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는데    다시 수십 보를 걸어가니까 공간이 넓어지면서 땅이 평평하고 집들이 높게 서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이 언덕에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며, 사람들이 왕래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 크게 놀라 오게 된 경우를 묻자 사    실대로 대답하고 수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어부가 돌아가게 되자 “절대 밖의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돌    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남기고 마을에 도착하여 태수(太守)에게 보고하니 태수    가 곧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하였지만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巫山之夢(무산지몽) : 무산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밀회나 정교를    <무당 무><뫼 산>    일컫는 말이다.

  <의 지><꿈 몽>

☞  옛날 선왕이 향연을 즐기다 피로해서 잠시 낮잠을 잤다.  잠이 들자 곧 아름    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누구일까?’생각하고 있을 때 그 여자가 왕의 곁으로 다    가와 말했다.

   “저는 무산(巫山)에 삽니다만 왕께서 이곳에 계사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모쪼록 동침하게 해주십시오.”

    왕은 굼에서나마 잠시 그 여자와 동침하였다.

    얼마 후 작별할 때가 되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저는 무산 남쪽 험준한 곳에 삽니다만,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산에 걸리고 저    녁에는 비가 되어 산을 내려와 아침 저녁으로 양대(陽臺) 기슭에 있습니다.”

    이상한 꿈에서 깬 왕이 이튿날 아침 일찍 무산 쪽을 바라보니 꿈속에서 선녀    가 말한 대로 무산에 아름다운 빛을 받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왕은 그 선녀를 생각하고 묘를 세워 조운(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남녀의은    밀한 사귐을 지칭할 때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성어이다.

 

刎頸之交(문경지교) : 목이 잘려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친밀한 사귐을 <목마를 문><목 경>    일컫는 말로서 깊은 우정을 뜻한다. [史記]

<의 지><사귈 교>

☞  인상여(藺相如)는 일개 식객에 지나지 않는 신분이었으나 조왕(趙王)이 수치를    당할 때 구해 준 공으로 상경(上卿)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    하여 말했다.

   “나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상여는 적은 공으로 나보다 위가 되었다.      그 사람은 원래 천한 놈이다.  그런 놈 밑에 있다는 것은 욕된 일이다.  상여를    만나게 되면 욕을 보여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상여는 염파와 만나는 것을 피했다.  상여의 부하 한 명이 비취    가 거슬려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은 염장군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겁해서 나는 떠나겠습    니다.”

    상여는 그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염 장군과 진왕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운가?”

   “물론 진왕이죠.”

   “나는 그런 진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정에서 진왕을 질책했을 뿐만 아니라 모    든 군신들을 욕보였소.  이러한 내가 왜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소.  강국인 진이    조를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잉오.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그 어는 한쪽은 쓰러지게 마련이 아니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    는 것은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염파는 이 밀을 전해 듣고 크게 반성했다.  그래서 염파는 상반신을 벗고 가    시 막대를 짐으로써 알몸에 그 매를 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상여의 집을 찾아가    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후 두사람은 친구가 되어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한다.

 

門前成市(문전성시) : 세력 있는 사람의 집 앞이 시장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문 문> <앞 전>    는 뜻으로, 세상 인심의 덧없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이룰 성><시가 시>                                      「漢書의 孫寶傳」

☞  정숭(鄭崇)은 와과 인척이 되는 명문 출신이다.  외척들의 횡포를 보다못해 여    러번 애제(哀帝)에게 직언했다.  애제도 그의 간언(諫言)에 귀를 기울였다.  정숭    은 애제가 동현(董賢)을 지나치게 믿는 것을 재삼 간언했으나 애제도 그 무렵에    는 이미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죄를 얻어 힐책당할    정도였다. 

    당시 조창(趙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을 고자질하여 아첨하는 인물로 정    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정승이 애제에게서 소원되고 있는 것을 무척 좋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정숭이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앙실의 여러 사람들과 내통하고 있습니    다.”하고 애제에게 이간질했다.  애제는 곧 정숭을 불러들여 문책했다.

   “그대의 집 앞은 시장터와 같다고 하더군.”

    힐책하는 애제의 말을 받아 정숭이 말했다.

   “신의 문은 시장 같아도 신의 마음은 문과 같습니다.  다시 한 번조사해 보옵    소서.”

    하지만 애제는 노해서 정숭을 옥사시키고 말았다.

 

尾生之信(미생지신) : 고지식한 미생이란 사람의 믿음으란 뜻으로, 쓸데없   <꼬리 미><날 생>     는 구애된 나머지 임기응변이 모자라서 죽음에까지 이   <의 지><믿을 신>     르게 된 것을 말한다.

☞  노(魯)나라에서 미생(味生)이라는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    나이가 개울 다리 밑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는 약속 시각에 도    착해서 애인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는     동안에 비가 많이 와서 개울물이 불어나 그는 물에 잠기게 되었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익사해 버리고 말    았다.

    쓸데없는 약속에 구애되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    이다.

 

拔本塞源(발본색원) : 뿌리를 뽑아 근본을 막는다는 뜻으로, 나쁜 폐단을   <뽑을 발><근본 본>    완전히 없애는 것을 말한다.

<막을 색><근원 원>

☞  아재백부 유의지유관면 목수지유본원 미인지유모주

    我在伯父 有衣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백부약렬관훼면 발본색원 전기모주 수계적기하유여일인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戒狄其何有余一人

   (나는 백부에게 있어서 마치 옷에 갓이 있고, 나무와 물에 부리와 근원이 있고, 백성들      에게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백부가 만일 갓을 찢어 벌고 뿌리를 뽑고 근      원을 막으며 지도자를 아주 버린다면 비록 저 오랑캐들이라도 나를 우습게 볼 것이       다)                                                       「春秋左氏傳」 

 

傍若無人(방약무인) : 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곁 방><같은 약>      말한다. 

<없을 무><사람 인>

☞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재주가 출중했으나     조국을 떠나 다른 여러 나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연(燕)나라에     갔을 때 악기를 잘 다루는 고점리(高漸離)라는 인물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서로 뜻이 잘 맞아 매일같이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취흥이 돌면 고점리    는 악기를 꺼내어 멋지게 곡조를 뽑았고 형가도 이에 답하여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심정이 처연해지면 울기도 하였는데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행동하였다.  여기에서 뱡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背水之陣(배수지진) :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대처     <등 배> <물 수>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史記]

  <의 지><진칠 진>

☞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은 위(魏)나라를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조(趙)나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조나라에서는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튼튼하게 진지를 구축     하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한신은 조나라 군사들이 유리한 곳을 점령하고 있으므로 싸워서는 이길수 없    다고 생각해서 기발한 전략을 세웠다.  그는 기마병 2천명을 조나라진지 가까운    산기슭에 매복시겨 놓고, 전투가 시작되어 조나라 군사들이 출동하여 성 안이     텅비게 되면 성안에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내리고 한나라 깃발을 올리도록 하였    다.  그리고 만 명의 군사들에게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했다.

    조나라 군사들은 이것을 보고 병법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다음날 한신이 조나라 진지를 공격하자, 조나라 군대는 성문을 열고 응전해     왔다.  한신은 거짓으로 퇴각하여 배수진을 친 군사들과 합류했다.

    한신이 배수진을 친 곳으로 듥어간 것을 본 조나라 군사들은 성을 비워놓고     일제히 공격해 왔다.  한신의 군사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므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매복해 있던 한나라 깃발을 내걸었다.

    이렇게 해서 한신의 군사들은 조나라를 망하게 했다.

 

百年下淸(백년하청) : 중국의 황하는 물이 언제나 누렇게 흐려 있으며 백년    <일백 백><해 년>  에 한 번 물이 깨끗해 질까 말까 한다고 한다.  아무리    <물 하><맑을 청>   기다려도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    주시유지왈 대하지청 인수기하 조운순다 직경작라

      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 兆云詢多 職競作羅

    (주나라의 시에 이르기를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한이 없어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도저히 부족하다.  점쳐서 꾀하는 일이 많으면 새가 그물에 억힌 듯 갈피      를 잡지 못한다)

    이 말은 초(楚)나라가 정(鄭)나라로 쳐들어오자, 정나라의 지도자들이 전(晉)나    라의 구원을 기다리는 동안 저항을 해야 한다는 측과 싸움을 해도 패하는 것은    뻔하니까 항복하자는 측이 맞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이때 항복을 주장    하는 측의 자사(子駟)가 나서며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즉, 어느 세월에 진나라    의 구원병이 오길 기다리겠느냐는 뜻으로 황하가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나라는 초나라에게 항복하여 전쟁을 면했다고 한다.

 

白眉(백미) : 양 눈썹 가운데 흰 털을 지닌 사람은 여러 사람 중에서도 뛰어 <흰 백><눈썹 미> 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  촉한(蜀漢) 때의 사람인 마량(馬良)의 자는 계상(季常)이었는데 형제 다섯 사람    이 모두 상(常) 자를 사용하여 자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들    형제를 마씨 오상(馬氏五常)이라고 불렀다.  이 다섯 형제는 한결같이 뛰어난 재    주를 가지고 있어 소문이 자자했지만, 이들 중 마량의 기량이 가장 뛰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마씨의 오상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 흰 눈썹(白眉)을 지닌    마량이 가장 훌륭하다.”라고 하였다.

    그 후 같은 형제뿐만 아니라, 같은 연배나 분야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가르켜 ‘백미(白眉)’라고 부르게 되었다.

 

伯牙絶絃(백아절현) :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뜻한 <맏 백><상아 아>      다.

<끊을 절><줄 현>

☞  춘추시대 때 백아(伯牙)라는 거문고의 명수가 있었다.  친구인 종자기(種子期)    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좋구나, 거문고 소리여! 강물처럼 일렁이는구나.”하고    기뻐해 주었다.  백아는 크게 감격하여 “아아, 정말 자네의 듣는 귀는 대단하군.    자네의 마음은 내 맘 그대로가 아닌가.  자네 앞에 나오면 거문고 소리를 속일    수가 없네.”두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    지 않아 불행하게도 종자기가 병을 얻어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죽는 날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    주는 진정한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자기처럼 백아의 음악을 이해    하고 알아주는 진정한 우정을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呂覽」

 

焚書坑儒(분서갱유) : 서적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한다는 말로, 백성 <불사를 분><글 서>    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뜻한다.

<구덩이 갱><선비 유>

☞  진시황(秦始皇)이 주연을 베풀었다.  이때 주청신(周靑臣)과 순우월(淳于越)리    진시황 앞에서 대립된 의견을 놓고 싸웠다.  이런 태도는 임금의 권위를 떨어뜨    리고 당파를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이를 금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안이 만들어졌다.

    시서(詩書)를 바치게 해서 태워 없애고 구태여 시서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끌어내다 죽였다.  또 옛날의 것을 가지고 지금의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다 처형시킨다는 내용의 안을 채택하여 실시케 했다.  이것이 분서(焚書)이다.     또 정부를 비난하는 학자들은 5백 명이나 구덩이를 파묻어 죽였다.  이것이 갱    유(坑儒)이다.

 

不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 : 함께 하늘을 같이 받들 수 없는 사이라는  <아닐 불><함께 구><받들 대>  뜻으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하늘 천><의 지><원수 수>     원수인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  부지수 불여공대천 형제지수 불반병 교유지수 부동국

    父之讐 弗與共戴天 兄弟之讐 不反兵 交遊之讐 不同國

   (어버이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받들 수 없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     에가서 무기를 가져올 여유가 없다.  언제나 무기를 휴대하고 있다가 즉시 죽여야 한      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하고 살 수 없다.  역시 죽여야 한다)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하나의 윤리관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鵬程萬里(붕정만리) : 상상 속의 매우 큰 새로 붕의 갈 길은 수만 리라는 뜻<큰새 붕><거리 정>   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도 못하는 원대한 희망이 <일만 만><이수 리>    나 사업 계획을 비유하는 말이다.

☞  북해(北海)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산다는 얘기가 있다.  크기는 어마어마하    게 크며 곤이 변해서 붕(鵬)이란 이름의 새가 되는데 이 새가 날면 하늘 전체를    뒤덮는 듯했고, 바람을 타고 북해 끝에서 남해 끝까지 난다고 한다.

    작은 물새들은 9만 리나 나는 붕을 비웃으며 “저 붕이란 녀석은 도대체 어디    까지 가려고 하는 걸까? 우리들은 멀리 날지 못해도 충분히 즐겁게 날아다니며    사는데 저 붕은 어디까지 날아갈 작정이지?”하고 말했다.

    결국 소인은 군자의 위대한 마음이나 행동을 알 턱이 없다.  이것이 대인과     소인의 다른 점이다.                                            「莊子」

 

肥肉之嘆(비육지탄) :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살이 쪘다는 탄식<넓적다리 비><고기 육> 이다. 영웅이 부질없이 세월을 보내며 공을 세우비  <의 지><탄식할 탄>    못함을 탄식한 말이다.

☞    상시신불리안 비육개소 금불부기 비리육생

      常時身不離鞍 肥肉皆焇 今不復騎 脾裏肉生

      일월여류 노장지 이공업부진 시이비이

      日月如流 老將至 而功業不津 是以悲耳

    (전에는 하루도 몸이 말 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도무지 상이 없더니, 이제는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으니 살이 올랐구나.  세월은 덧없이 가건만 이제껏 공업을 쌓      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슬프도다)                            [三國志의 蜀志]

    유비(劉備)는 조조(曹操)에게 쫓겨 전전하다가 끝내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    에게 몸을 의탁하고 살았다.

    어느 날 유표가 술자리를 마련하여 유비를 불렀다.  유비는 술을 마시다가 변    소를 갔는데 무심코 넓적다리를 보니까 살이 많이 쪘다.  그러자 자신의 신세가    한심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유표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눈물은 흘렸소?”

    그러자 앞에 있는 글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四面楚歌(사면초가) :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적에게 <넉 사><겉 면>       완전히 포위당하여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초나라 초><노래 가>   고립된 상태에 빠진 것을 말한다.              [史記] 

☞  초(楚)왕 항우(項羽)는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漢)나라 군사에게 포위당했     다.  항우의 진영은 식량도 떨어지고 군사들도 사기가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한나라 장량(張良)이 꾀를 내어 한밤중에 초날 노래를 부르게 했다.  전    쟁터에서 고향의 노래를 들은 초나라 군사들은 더욱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항우는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리자 크게 놀랐다.  ‘한나라가 이미 초나    라를 다 차지했는가? 어찌 이렇게도 많은 초나라 사람이 있단 말이냐?’ 이제는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결별연을 열었다.

    항우에게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총희(寵姬)가 있었는데 그림자같이 언제나 곁    에서 떠나지 않았다.  슬픈 감정을 누를 길이 없어 사랑하는 우미인과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역발산금기개세

      力拔山今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세상을 덮는다

      시불리금추불서

      時不利今騅不逝  때는 불리하고 추(말 이름)는 가지 않는다

      추불서금가나하

      騅不逝今可奈何  추는 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우금우금나약하

      虞今虞今奈若何  우(虞)야 우야 너는 어찌할 것인가

    반복해서 몇 번 노래하자 우미인도 이별의 슬픔을 가득 담고 애절하게 따라     불렀다.

   “한나라 병사들은 이미 땅을 차지해 사방은 초나라 노랫소리뿐 대왕의 의기도     다되니, 천첩이 어찌 살아 남으리요.”

    귀신일도 꺾을 듯했던 항우의 얼굴에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밤     항우는 간신히 한나라 군사들의 포위를 뚫고 탈출에 성공했지만 이미 천하의 대    세는 한나라의 유방에게 기울어졌고, 항우는 고향이 그리워 일당 오강(烏江)까지    달려가긴 했으나 패군지장으로서 돌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결했다.

蛇足(사족) : 화사첨족(畫蛇添足)의 준말로, 뱀을 그리는데 발까지 그려 넣는<뱀 사><다리 족> 다는 뜻으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스레 하는 것, 또는                필요 이상의 일을 함을 일컫는다.        [史記, 戰國策] 

☞  초(楚)나라의 재상인 소양(昭陽)은 위(魏)나라를 쳐서 승리하자 군대를 이동시    켜 다시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제나라는 진진(陳軫)을    초나라에 보내 다음과 같이 소양을 설득했다.

    “초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뱀을 먼저 그린 사람이 모두 마    시기로 내기를 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제일 먼저 뱀을 그려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술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계속 뱀의 발을 그리며, 자    신은 뱀의 발도 그릴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 나서 그의 술잔을 빼앗으며, ‘뱀은 원래 발이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발을 그리는가.’하고 술을 마셔 버렸습니다.  뱀의 발을 그린 사람은 끝내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재상께서는 지금 위나라를 공격하여 장군들을 죽이고 여러 성을 빼앗아 명성    이 이미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또 군사를 이동시켜 제를 공격하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어도 관직은 현재 이상으로는 오르지 못합니다.  만약 패하    면 목숨까지 잃게 되며 이러쿵저러쿵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래서는 뱀을 그    리고 다리까지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을 중지하고 제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    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얻고, 또 잃는 것이 없는 술책입니다.”  

    마침내 소양은 그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군대를 철수해 돌아갔다.

 

殺身成人(살신성인) :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룩한다는 뜻으로, 몸<죽일 살><몸 신>     을 바쳐 올바른 도리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論語] 

<이룰 성><사람 인> 

 ☞     자왈 지사인인무구생이해인 유살신이성인

        子曰 志士仁人無求生以害人 有殺身以成仁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있는 선비와 인자(仁者)는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치      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일은 있느니라.”고 하였다)

     지사(志士)는 굳은 뜻을 지닌 선비요, 인인(仁人)은 덕을 이룬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항상 인(仁 )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三顧草廬(삼고초려) : 유비(劉備)가 세 번이나 오두막집으로 제갈량(諸葛 <석 삼><돌아볼 고>    亮)을 찾아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인재를 맞아<풀 초><오두막집 려> 들이기 위해서 참을성 있게 교섭하고 마음쓰는 것을 말                         한다.                                    [三國演義] 

☞  한(漢)나라 말기에 천하가 매우 어지러웠다.  난세(亂世)였다.  유비(劉備)는     이 일을 함께 상의하고 지도를 구할 만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서서(徐庶)와 사마휘(司馬徽)가 학식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나며 덕ㅁㅇ    이 높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추천했다.

    유비는 예물을 들고 참모들과 와룡강(臥龍江)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공명을 찾    아가 자기를 도와 한나라 왕실의 부흥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청하려 했다.  그러    나 마침 제갈공명은 외출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유비는 다시 제갈공명을 찾아갔으나 역시 집에 없었다.  유

  비는 할 수 없이 편지를 남겨 놓고 발길을 돌렸다.

    세번째로 유비는 다시 제갈공명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마침 제갈공명은 낮    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잠에서 깰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유비를 만난 제갈공명은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유비의 뜻에 따라 한나라 부흥    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桑田碧海(상전벽해) :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니, 곧 세상 <뽕나무 상><밭 전>    모습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말한다.

<푸른 벽><바다 해>

☞  유정지(劉廷芝)의 대비백발옹(代悲白髮翁)이라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낙양성동도리화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이

    비래비거낙수가

    飛來飛去落誰家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

    낙양여아석안색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의 계집은 제 얼굴이 스스로도 아까운지

    행봉여아장탄식

    行逢女兒長嘆息 가다가 계집이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다

    금년화락안색개

    今年花落顔色改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

    명년화개부수재

    明年花開復誰在 내년에 피는 꽃은 그 누가 보려는가

    경문상전변성해

    景聞桑田變成海 뽕나무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말이다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로 쓰고 있지만 보통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쓰인다.

 

塞翁之馬(새옹지마) : 인간 만사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무쌍하여 예 <변방 새><할아버지 옹> 측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淮南子 人間熏]

   <의 지><말 마>

☞  옛날 중국 북방 오랑캐들이 사는 호지(胡地)의 국경에 점술에 능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이유 없이 오랑캐 땅으로 넘    어가 버렸다.  이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복    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몇 달 뒤 그 말은 오랑캐의 좋은 말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화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노인의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여 오랑캐 땅에서 온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뜻밖의 복이 될 수    도 있다.”고 하였다.

    과연 일년 뒤 오랑캐가 변방으로 쳐들어오자 젊은이들이 병사로 뽑혀 가서 전    쟁터에서 대부분 죽음을 당했지만, 이 노인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    쟁터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송양지인(宋襄之仁) : 송나라 양공(襄公)이 베푼 자애라는 뜻으로, 필요 없<송나라 송><도울 양>  는 동정을 비유하여 쓴다.             [春秋 左氏傳] 

 <의 지><어질 인>

☞  춘추시대 송(宋)나라에서 양공(襄公)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즉 위하    고 얼마 되지 않아 천재지변이 계속되고 전쟁이 일어났다.

    양공이 인솔하는 송군(宋軍)은 초군(楚軍)과 홍수(泓水) 근처에서 싸우게 되었    다.  미처 포진(布陣)을 못한 초군이 겨우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재상 목이(目夷)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적은 우세하고 아군은 열세이니 정면으로 충돌하면 승부가 되지 않습니다.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 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공은 상대하지 않았다.  그 틈에 초군은 강을 건너서 진형을 정비하    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목이가 공격을 진언했으나 양공은 좀처럼 공격을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전투를 해도 비겁하게 싸우지는 않겠다는 것이 양공의 생각이기 때문    이었다.

    결국 적의 싸울 준비가 완료된 다음 송군은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화살이 꽂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죽고 말    았다.

 

수구초심(首邱初心) :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머리 수><언덕 구><처음 초><마음 심>                    [禮記 檀弓上篇]

☞  고지인우언왈호사정구수인야

    古之人有言曰狐死正丘首仁也

    (옛사람이 이르길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      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여우는 구릉(丘陵)에 굴을 파고 산다고 한다.  그러다 외지에서 죽음을 맞게     되면 항상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 쪽으로 두고 죽는다.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회귀(回歸)하려는 것이 동물의 본성이지만, 특히 여    우의 경우를 들어서 이런 성어가 생겼다.

 

漱石枕流(수석침류) : 침석수류(枕石漱流 , 돌을 베개로 하고 냇물로 양치 <양치질 수><돌 석>    질함)이라고 할 것을 수석침류(漱石枕流)라고 잘못 말<베개 침><흐를 류>    한 것이다.  이를 단단하게 하고 귀를 씻기 위함이라                  는 뜻으로 억지 변명을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晋書 孫楚傳]

☞  진(晋)나라 초기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속세를 떠나    산중에 은신하기로 작정하고 친구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때 ‘돌을 베개 삼    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흐름을 베개 삼는다(漱石枕流).’라고 했다.

    친구가 그 말을 듣고 따지자 손초는 재빨리 억지 변명을 했다.

   “흐름을 베개로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고 하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

 

水魚之交(수어지교) : 물고기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서로 끊<물 수><고기 어>     을래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사이를 뜻한다.  깊은 교 <의 지><사귈 교>      우 관계를 말하다.  [三國志  蜀志 諸葛亮傳]

☞  선주여제갈량     계사   선지   정호일밀     관우   장비등

    先主與諸葛亮으로 計事에 善之라 情好日密하니 關羽와 張飛等이

    불열       선생왈  고지유공명   유어지유수     원물부언

    不悅이어늘 先生曰  孤之有孔明은 猶魚之有水하니 願勿復言이어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과 일을 꾀하여서 정분이 날로 더 두터워졌다.  관우(關      羽)와 장비(張飛) 등이 이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내게 제갈공명      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 원컨대 그대들은 다시는 말을 하지 말       라.”고 하였다.)

 

守株待兎(수주대토) : 밭에 있는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나오기만을 기 <지킬 수><그루터기 주> 다린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집착하여 융통성이 없는 <기다릴 대><토끼 토>   것을 말한 것이다.                        [韓非子]

☞  한 송(宋) 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밭 갈던 쟁기를 놓아 버리고,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잡으려고 했으    나 다시는 토끼를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세사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한비자(韓非子) :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법가(法家)의 이론을 정립했으며, 특히                      탁월한 비유로 유명하다.   

 

脣亡齒寒(순망치한) : 사람의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한쪽이  <입술 순><없을 망>    망하면 한쪽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됨을 비유해서 일 <이 치><추울 한>       컫는다.                           [春秋左氏  僖公]

☞  춘추시대 진헌공(晋獻公)은 전부터 괵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그러려면 우(虞)나    라를 지나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뇌물을 보내어 진(晋)나라와 우(虞)나라의 우    의를 약속하며 길을 비켜 줄 것을 청했다.

    우공은 많은 뇌물과 감언에 솔깃하여 청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러자 궁지    기(宮之奇)라는 현명한 신하가 이를 말리며 우공에게 충고했다.

   “괵나라는 우리 우나라와 한몸과 같으므로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도 망할것입니    다.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가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원수라    고도 생각할 수 있는 진(晋)나라 군사들이 우리 나라를 통과하게 해서는 안 됩니    다.”

    이렇게 설득을 해도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공은 듣지 않았다.  결국 궁지기    는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일족을 이끌고 우나라에서 떠났다.  과연 얼마 안 되    어 진나라는 괵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나중에는 우나라까지 공격해    들어왔다.  우공은 포로 신셋가 되었고 궁지기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신의 어리    석음을 자책했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羊頭狗肉(양두구육) :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것<양 양><머리 두>      으로, 겉은 그럴 듯하고 보기 좋으나 속은 허술한 경 <개 구><고기 육>       우에 사용한다.                「恒言錄  晏子春秋」

☞  춘추시대의 제영공(齊靈公)은 묘령의 여자에게 남장을 시켜 놓고 즐기는 이상    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민간에까지 남장을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    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제영공은 백성들이 임금의 흉내를 낸다고 해서 남장을 금지하    라는 명령을 엄하게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유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    를 제영공은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께서 그러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데 백성들에게 금지하는 것은 잘못입니    다.  이것은 양의 머리를 문에다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    니다.”

    이 말을 들은 제영공은 곧 궁중에서도 남장을 금했다.  그랬더니 즉시 제나라    전체에 남장한 여자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쇠머러를 문에 걸어 놓고    말고기를 판다고 해도 같은 뜻이다.

 

梁上君子(양상군자) :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일컫는 말이  <대들보 양><위 상>    다.  또 천장의 쥐를 말할 때도 사용한다.

<군자 군><아들 자>                                        [後漢書 陳寔傳]

☞  진식(陳寔)의 자는 중궁(仲弓)이었다.  일찍이 현리(縣吏)의 자리에 있었는데     뜻이 있어 글을 좋아하므로 현령(縣令)이 이를 기특하게 여기어 태학(太學)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나중에는 태구장(太丘長)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도둑이 그의 방에 들어와서 들보 위에 앉아 있었다.  진식이 슬쩍 눈치채    고는 자손들을 불러 놓고 이를 훈계하여 말하되, “무릇 착하지 못한 사람은 본    래 악한 것이 아니라,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다.  양상 군자    가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도둑이 크게 놀라 제발로 내려와서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비니, “그대의 모습을 보니 약한 사람 같지 않다.  분명 가난 때문일 것    이다.”라고 말하며 비단 두 필을 주었다.

 

漁父之利(어부지리) : 황새와 조개가 서로 싸우는 바람에 어부가 둘 다 잡아 <고기잡을 어><아버지 부> 이익을 보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이해 관계로 <의 지><이로울 리>     서로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득을 보는 경우를 빗                           대어 말한 것이다.                      「戰國策」

☞  전국시대의 연(燕)은 중국 북동부에 위치하면서 서쪽으로는 조(趙), 남쪽으로    는 제(齊)와 접하고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침략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조나    라가 연나라를 치려 하자 소대(蘇代)가 연나라를 위하여 존라의 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오늘 제가 오다가 역수(易水 )를 지나려니 조개가 마침 나와서 볕을 쬐는데    황새가 그 조개를 쪼았습니다.  조개가 입을 다물어 황새의 부리를 물자 황새     가 말하기를, ‘오늘도 빅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니, 조개도 황새에게 ‘오늘도 못 빼내고 내일도 못 빼내면,    황새 너에게도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이 서로 놓으려 하지 않    으니 어부가 둘을 함께 잡아갔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존라와 연    나라가 서로 오랫동안 싸우다가 백성들이 피폐하게 되면, 저는 강한 진(秦)나라    가 어부가 될까 걱정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혜왕은 이 말을 듣고 연나라 침공을 포기했다.

 

緣木求魚(연목구어) :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인연 연><나무 목>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구할 구><고기 어>                                        [孟子 梁惠王上] 

☞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제의 환공(桓公)과 진(晋)의     문공(文公)의 패엄을 듣고 싶어하자 맹자가 물었다.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날와 원한을 맺    는 것이 좋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자 맹자가 말했다.

    연즉왕지소대욕 가지기 욕벽토지조진초 이중국이무사이야

    然則王之所大欲 可知己 欲辟土地朝秦楚 莅中國而撫四夷也

    이약소위 구부소욕 유연목이구어야

    以若所爲 求芣所欲 猶緣木而求魚也

    (그래서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이미 다 알겠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       (秦)이나 초(楚)같은 대국이 인사를 드리러 오게 하고, 중국 진토를 지배해서 사방의       오랑캐들을 그런 무력적인 방법으로 거느리려고 하신는 것이지요.  하나, 그것은 마       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놀라며 물었다.

    “그토록 무리란 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예,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보다 더 무리입니다.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 오십 보를 도망친 자나 백 보를 도망친 자나 모 <다섯 오><열 십><걸음 보>  두 비겁한 것은 같다.  외면상 약간의 차이가 있     <일백 백><걸음 보>     더라도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  「孟子 梁惠王篇」

☞  양혜왕(梁惠王)이 맹자(孟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저는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에 흉년    이 들면 하동(河東)의 곡식을 옮겨다 줍니다.  그리고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    한 그렇게 합니다.  다른 날는 저처럼 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우리 나라의 백성    이 더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서로 격전    을 벌이고자 개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고 합시다.  싸움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병사가 겁을 먹고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창을 끌    면서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백 보쯤 가서 섰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도망쳤던    자가 오십 보에서 멈춰 서더니 백 보를 도망친 자에게 겁쟁이라며 비웃었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왕께서 그것을 아신다면 인접 국가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      오.”

    결국 인접국의 정치나 양혜왕의 정치나 맹자의 왕도(王道)에서 보면 아무리 백    성을 생각한다 해도 역시 오십 보 백 보의 차이라고 말한 것이다.

 

吳越同舟(오월동주) : ①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이 한자리에 동석하게 되는 <오나라 오><월나라 월> 경우를 말한다.  ②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한 배에 <같을 동><배 주>      탄 이상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협력하게 된다                          는 뜻이다.                                  [孫子]

☞  손자(孫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게 되면, 위험에서 벗    어나기 위해 서로 돕는 것이 마치 좌우의 손이 서로 협력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원수처럼 서로 미원하는 사람들도 죽음 직전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서로 힘을 합해 같이 노력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이런 본뜻과는 달리 사    이가 나쁜 사람끼리 한자리에 있는 경우에 더 많이 쓰인다.

 

烏合之衆(오합지중) : 까마귀가 모인 것같이 질서가 없고 규칙이 없는 군중<까마귀 오><모일 합>  을 일컫는다.  어중이 떠중이의 모임을 가리키며 오합<의 지><무리 중>      지졸(烏合之卒)이라고도 한다.

☞  전한(前漢) 말엽 유수(劉秀)가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을 몰아내고 경제(景     帝)의 자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삼아 다시 한(漢)의 세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중 왕랑이란 자가 스스로 천자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으므로 다음해 유수는 군대를 이끌    고 정벌에 나섰다.

    그러자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왕랑을 두둔하고 나섰다.  유수의 인격을     흠모해서 부하가 된 경감(耿龕)이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왕랑이란 본래 이름도 없는 도적인데 황제의 이름을 사칭하여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장안에 들어가 군대를 이끌고 태원(太原), 대군(大郡)방면으로     나아가 오합지중인 왕랑의 군사를 친다면 썩은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왕랑을 포    로로 잡게 될 것입니다.”

    경감은 유수를 도와 많은 무공을 세우고 후에 건의대장군(建儀大將軍)에 임명    되었다고 한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말로, 온고지신(溫<따뜻할 온><옛 고>    故知新)으로 줄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論語 爲政  ] 

<말 이을 이><알 지><새 신>

☞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되새길 줄 알고 새것을 살필 줄 알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됨직하다)

    고전의 근본 정신을 잘 알아서 새 지식을 바르게 인식하면 스승이 될 수 있     다.  그러니 학문을 그런 방법으로 섭취해야 참다운 학문을 닦을 수 있다는 말    이다.

 

臥薪嘗膽(와신상담) : 섶에 누워서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누울 와><섶 신>    위하여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심신을 단련함을 비유한   <맛볼 상><쓸개 담>   말이다.                                   [十八史 ] 

☞  주경왕(周敬王) 24년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군사를 이끌고 월(越)나라로    쳐들어 갔다가, 월나라 왕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죽었다.  그는 죽기 직전 아들    이 부차(夫差)에게 복수를 부탁하였다.

    그 후 부차는 땔나무 위에서 자며, 자기 방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부차야!     월나라 사람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의 결심을 듣고 기선을 제압하려고 오나라에 쳐들어 갔    으나 부차에게 패했다.  그는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간신히 회계산으로 달    아났지만, 부차에게 신하가 되기로 약조하고 굴욕적으로 항복을 하게 되었다.

    온갖 모욕을 겪고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옆에 항상 곰의 쓸개를 달아 두었    다.  그리고 이 쓸개를 핥으며,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하고 마음속으    로 복수를 다짐했다.

    그후 월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구츤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자만에 빠    진 오나라 왕 부차는 결국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자살했다.  이렇게    하여 구천은 오를 대신해서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와신상담은 오나라 왕 부차의 와신(臥薪)과 월나라 왕 구천의 상담(嘗膽)이 합    쳐진 것이다.

 

龍頭蛇尾(용두사미) : 제대로 완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는 경우를 가르킨    <용 룡><머리 두>     다.                                      [碧巖集]

  <뱀 사><꼬리 미>

☞  진존자는 도를 깨친 중이었는데 여기저기 유랑하다가 어떤 중을 만나 서로 말    을 주고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상대가 “예잇!”하고 호령    을 하는 것이었다.  그 중의 재치 있는 태도와 말재간은 제법 도를 닦은 도승처    럼 보였다.  그러나 진존자는 ‘이 중이 얼른 보기엔 그럴 듯하게 보이기는 한데    역시 참으로 도를 깨우치지는 못한 것 같다.  모르긴 해도 한갓 용의 머리에 뱀    의 꼬리이기 쉬울 것 같다(似則似 是則未是 只恐龍頭蛇尾).’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에게 물었다.

    “그대는 호령하는 위세는 좋은데, 소리를 외친 뒤에는 무엇으로 어떻게 그 마    무리를 지을 생각인가?”

    그러자 중은 그만 뱀의 꼬리를 내보이는 것처럼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愚公移山(우공이산)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어리석을 우><벼슬 공>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옮길 이><뫼 산>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列子」

☞  태행산(太行山)은 둘레가 칠백 리나 되고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커다란 산으    로, 원래는 기주(冀州) 남쪽, 하양(河陽) 북쪽에 있었다.  우공(愚公)은 나이가 아    흔 가까이 된 노인이었다.

    그는 태행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나다니기가 몹시 불편하였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이 산을 옮기기로 했다.  그는 아들 손자와 함    께 산을 허물고 돌을 깨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渤海)까지 가서 버리고 왔는데,     한 번 갔다 오는데 일년이 걸렷다고 한다.

    하곡(河曲)에 사는 지수(智叟)라는 노인이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그 약한 힘으로 어떻게 많은 도과 흙을 운반    하려 하는가?”

    그러자 우공이 “당신은 어찌 그렇게 소견이 좁은가? 내가 죽더라도 나에게는    자식이 남아 있고, 그 자식이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다시 자식을 낳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는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지만, 산은 결코 불어나는 일이 없네.  그러    니 언젠가는 산이 평평해질 날이 있을 것일세.”라고 말했다.  지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산신령은 이 말을 듣고 우공의 말대로 산이 없어질까 겁이 났다.  그래서 옥    황상제에게 이를 말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    동하여 지금의 자리로 태행산을 옮겨 주었다.

 

有備無患(유비무환) : 사전에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뒷걱정이 없다는 말 <있을 유><갖출 비>    이다.                           「書經 春秋左氏傳」

<없을 무><근심 환>              

☞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에서는 나라의 위급함을    진나라에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진의 도승은 즉시 노(魯)․제(齊)․조(曹)나라    등 12개국에 이 사실을 알려 연합군을 편성하여 위강의 지휘로 정나라 도성을     둘러싸고는 송나라에 대한 침략 야욕을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정    나라는 속구무책이었으므로, 송․진․제 등의 12개국과 불가침과 화해 조약을     맺고 말았다.

    초나라는 정나라가 북방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여 여겨 군대를     풀어 정나라를 침공했다.  초나라 군대의 강대함을 안 정나라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할 수 없이 초나라와도 맹약을 체결했다.

    정나라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북방 12개국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북방 12개국에서는 또 연합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쳤다.

    힘이 부친 정나라는 화친(和親)을 청했고 진이 응해 주자 그에 대한 감사의 뜻    으로 수많은 보물을 선물로 보냈으나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편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居安思危 費 有備則無患 거안사위 사즉유비 유비즉무환).”

    이 말을 들은 도공은 위강의 넓은 식견에 새삼 탄복했다고 한다.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얏나무 이><아래 하>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바꾸어 신으면 마치 오<아닐 불><정돈할 정>     이를 도둑질하는 것같이 보이고, 오얏이 익은 나무     <갓 관>                밑에서 손을 들어 관을 고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므로, 그렇듯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하라는 뜻이다. 「烈女傳」

☞  전국시대 제(齊)나라는 위왕(威王)이 왕위에 있었으나 국정은 영신(佞臣)인 주    파호(周破胡)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위왕의 후궁 중에 우희(虞姬)라는 여자가 있어 주파호의 비행을 왕에게 호소했    다.  주파호는 그 사실을 알고 우희를 모함하고자 우희와 북곽 선생의 사이가     수상하다고 떠들어댔다.  왕은 우희를 불러 사실 여부를 물었다.

    “저는 오랫동안 진심으로 왕을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만 지금 이렇게 간사한     자의 모함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결백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만약 제    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하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하라    는 말처럼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않았던 점이 큰 실수였습니다.”

    우희가 진심으로 이렇게 충언하자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서, 주파호를 죽이    고 내정을 바로잡았으므로 제나라는 크게 안정이 되었다.

 

一刻千金(일각천금) :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의 값어치가 있을 정도로 귀중 <한 일><시각 각>      하다는 뜻이다.                   「蘇東坡의 春夜行」

<일천 천><쇠 금>

☞  춘소일각치천금

    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달밤의 한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네

    화유청향월유음

    花有淸香月有陰  꽃에는 맑은 향기가 있고 달은 흐려져 있네

    가관루대성적적

    歌管樓臺聲寂寂  노래 부르고 피리 불던 누대도 소리 없이 적적하네

    추천원낙야침침

    鞦韆院落夜沈沈  그네가 걸려 있는 안뜰은 밤만 깊어 가누나

 

戰戰兢兢(전전긍긍) : 겁을 먹고 벌벌 떨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말한다.

<싸울 전><싸울 전><조심할 긍><조심할 긍>

☞  불감폭호 불감풍하

    不敢暴虎 不敢馮河  맨손으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서는 황하를 건널                         수 없네

    인지기일 막지기타

    人知其一 莫知其他  사람들이 그 한 가지는 알고 있으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전전긍긍 여임심연

    戰戰兢兢 如臨深淵 생각하면 언제나 벌벌 떨면서 깊고 깊은 못가에 임하는                           심정

    여리박빙

    如履薄氷  엷디 엷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

 

朝三暮四(조삼모사) : 간사환 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을 말한다.     <아침 조><석 삼><저물 모><넉 사>                              「列子」

☞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원숭이를 좋아하여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와 서로 뜻이 통할 정도로 원숭이를 아끼고 사랑했    지만, 원숭이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식량을 제한해야만    했다.  그래서 먼저 원숭이에게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    에 네 개 주면 어떻겠는가?”라고 하자, 모든 원숭이들이 일어나 화를 냈다.  저    공은 바로 이어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면 어떻겠는가?”    라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뛸 둣이 좋아했다. 

    열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지자(智者)가 우자(愚者)를 농락하고, 성    인이 중인을 농락하는 것도 저공이 지(智)로 원숭이들을 농락하는 것과 같다.”

 

指鹿爲馬(지록위마) :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으로, ① 윗사람을 <손가락 지><사슴 록>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과, ② 모순된 <할 위><말 마>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임을 말한다.

☞  진시황 27년 7월 시황제는 순행 도중 사구(沙丘)의 평대(平臺)에서 죽었다.      시황은 죽기에 앞서 만리장성에 가 있는 태자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식을 치르    게 하라는 조서를 남겼다.

    그 후 진나라는 승상 조고(趙高)가 권력을 장악하여, 왕은 단지 허수아비에 불    과했다.  조고는 진시황의 아들인 부소를 죽이고, 둘째 아들인 호해(胡亥)를 왕    으로 세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여러 신하들 중에 자기편 사람이 누군인지 분명하게 알고 싶어했다.  그    래서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왕에게 바치면서 “말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승상이 잘못 알았소.  사슴을 어째서 말이라고 하    오.”라고 했다.  왕은 답답하여 주위에 있던 여러 신하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떤 신하는 대답을 못하고, 어떤 신하는 사슴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조고는 이제 자신을 편들어 주는 신하와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뒤에서 사슴이라고 대답한 신하들을 모두 법에 걸    어 죽여 버렸다.

    그 뒤로 신하들은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의 잘못을 사실대로 말하    는 자가 없었다.  이처럼 조고가 권력을 한손에 잡고 마음대로 휘두르던 진나라    는 결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국운이 쇠하였다.

 

靑出於藍(청출어람) : 푸른 빛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푸를 청><날 출>      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말이다.

<어조사 어><쪽 람>

☞     학불가이이 청출어람이청어람 빙수위지이한어수

       學不可以已 靑出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잠시도 쉬어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만들지만 물보다 더 차다)

    스승에게서 배우기는 하지만 스승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더 깊    고 높은 학문과 덕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荀子 勸學篇」

 

他山之石(타산지석) : 타인 소유의 산에서 나온 돌을 가지고 옥을 갈 수 있<다른 타><뫼 산>     다는 뜻으로, 군자도 소인의 행동을 보고 수양과 학식   <의 지><돌 석>       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詩經」

☞  아래의 시는 선왕이 초야에 있는 현자를 구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하기 위    해 지었다고 한다.

    학명우구고

    鶴鳴于九皐  학이 깊은 산속의 울어도

    성문우천

    聲聞于天   그 소리는 하늘까지 울려 퍼진다

    어재우저

    魚在于渚   물가에 나가 노는 물고기라도

    혹잠재연

    或潛在淵   때로는 연못 깊이 숨기도 한다

    낙피지원

    樂彼之園   즐거운 저기 저 동산 위에는

    원유수단

    爰有樹檀   의지하고 쉴 한 그루의 항목은 있어도

    기하유곡

    其下維穀   그 밑에 나쁜 나무만 있어 그렇게 안 된다

    타인지석

    他人之石   다른 사람 산의 몹쓸 돌이지만

    가이공옥

    可以攻玉   구슬은 그것으로 갈아서 빛이 난다

 

推敲(퇴고) : 글을 다듬고 고친다는 뜻이다.    「劉賓客嘉和錄」

<밀 퇴><두드릴 고>

☞  당(唐)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가 장안(長安)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이다.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데 시상이 떠올랐다.

     한거소린병

     閑居少隣竝  인가가 드문 곳에 한가한 집이 있어서

     초경입황원

     草徑入荒園  풀에 묻힌 길이 거친 전원과 통하고 있네

     조숙지변수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자고

     승고월하문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이 시에서 고(敲)보다 퇴(推)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    다.  나귀를 탄 채 두 글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가 경조군(京兆君) 벼슬에 있는    한유(韓愈)의 행차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행차를 막은 혐의로 한유 앞으로 끌려    온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한유는 말 위에서 한참 동안 그 시를 읊어 보다가 ‘퇴’보다는 ‘고’가 좋다고 하    고는 가도와 고삐를 나란히 하여 행차를 계속했다.  이때부터 글을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하게 되었다.

 

破瓜之年(파과지년) : 여자의 나이 16세와 남자의 나이 64를 가리키는 말이<깨뜨릴 파><오이 과>   다.

<의 지><해 년>

☞  과(瓜)라는 글자를 쪼개 보념 팔(八)자가 둘이 된다.  그래서 여자를 참외에     비유하고, 또 그것을 깨면 여덟이 둘이 되므로, 여자의 나이 열여섯을 가리키게    된다.  첫 경도(經度)가 있게 되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남자의 나이 예순넷을 가리켜 파과(破瓜)라고 하는 것은 여덟을 서로 곱    하면 예순넷이 되기 때문인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들 나    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螢雪之功(형설지공) :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하여 성공했다는 뜻으로, 가 <반딧불 형><눈 설>   난과 어려운 역경을 물리치고 고학한 성과를 말한다.  <의 지><공 공>                                                     「蒙求」

☞  진(晋)나라의 차윤(車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집안이 가    난하여 밤에 책을 읽으려 해도 등잔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여    름에는 비단 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고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그는 나중    에 관직이 상서랑(尙書郞)에까지 이르렀다.

    또 진(晋)나라의 손강(孫康)도 역시 집안이 가난해서 기름을 살 수가 없었는데    창가에 쌓인 흰 눈의 빛을 빌려서 책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어사대부    (御史大夫)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후세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했다.

 

畵龍點睛(화룡점정) : 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뜻 <그림 화><용 룡>      으로, 최후의 손질을 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 <점찍을 점><눈동자 정> 키는 것을 뜻한다.                       「水衡記」

☞  장승요(張僧繇)는 양(梁)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로, 그의 그림에 대한 일화들이    많이 남아 있다.  수도인 금릉(金陵) 안락사(安樂寺)의 벽에 네 마리의 용을 그    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눈동자를 그리    면 그림속의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자 그는 용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벽 속에서    뇌광(雷光)이 빛나고 요란스런 뇌성이 울리더니 비늘을 번쩍이며 용이 벽에서 튀    어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세 마리의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출처 : jejudoshu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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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빅히트 대표 방시혁 의장의 과거 축사를 공개합니다.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축사네요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 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 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미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하면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어떤 열정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 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라고 반 협박조로 (대응해)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결정들, 훗날 보면 의미 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큰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 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YouTube 시대의 비틀즈’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 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 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 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의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 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 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다란 꿈을 향해 끊임 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 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K-Pop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 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 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 한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 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 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 세상에 대해 끊임 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 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시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 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잘 찾아서, 여러분다운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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